아내와 함께 우리 교회 목요기도회에 참석했습니다. 아내는 통증도 심하고 체력적으로 부담이 있었지만, 기도의 자리에 가서 성도님들의 중보기도를 받고 싶어 했습니다. 그날은 엄청나게 많은 눈이 내리고 있었고, 승용차를 운전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예배당에는 50명이 넘는 성도님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뜨겁게 찬양하고, 장로님의 짧은 메시지가 선포되고, 간절하게 기도하는 시간이 계속되었습니다. 목요기도회는 아내의 말기암 진단과 함께 성도님들이 자발적으로 시작한 기도 모임이고, 지난 1년간 한결같이 기도해 왔는데, 성령님의 역사로만 가능할 것입니다. 그야말로 은혜와 감동의 현장이었습니다. 우리 교회가 제자훈련하는 교회로서 평신도운동의 모범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일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 18:19~20)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성도들이 합심하여 기도하는 곳에 당연히 주님이 함께하셨을 겁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매주 모여서 마음을 다해 찬양하고 기도할 때, 그 기도는 하늘의 보좌를 움직이고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하게 했을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때에 주님의 일하심을 기대할 뿐입니다.
절박한 상황을 맞아 3일간 금식기도를 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믿음의 표현이었습니다. 아내를 돌보는 가운데 설교와 심방 등 교회 사역을 병행하면서 하는 금식이었지만, 힘든 줄 모르게 3일이 지났습니다. 그만큼 간절했나 봅니다.
그런데 금식기도에도 함께한 분들이 있었습니다. 지난 토요일 나주에서 목회하는 어느 목사님에게서 문자가 왔습니다. “목사님, 사모님을 위해서 성령님의 임재와 치유하심을 구하며 금식기도 시작합니다.” 그분은 제가 금식기도를 하려는 것을 모르고 있었는데, 동일한 성령님의 감동으로 금식기도에 참여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 성도님들은 여러분들이 동참했습니다. 어떤 분은 한 번도 해본 경험이 없어서 금식을 어떻게 하는 줄도 모르고 3일 동안 온전히 금식하신 분도 있었습니다. 물을 마셔도 되는지, 끝난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되는지도 모르고 무작정 시작한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하루 한 끼니씩 금식하면서 마음을 모아줬습니다. 그렇게 많은 분들이 제 아내 박은주 사모의 치유와 회복을 위해, 성령충만을 위해 중보기도를 하고 있는데, 이것은 단순히 인간적인 정으로는 될 수 없는 일입니다. 인간적으로 아무리 안타까워해도 작정하고 기도의 자리에 나가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저 안타까워할 뿐입니다. 기도의 자리로 나가는 것은 자기 부인과 헌신의 자리, 십자가를 따르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중보기도는 내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닌, 바로 성령님의 감동과 인도하심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기도의 감동에 순종하는 의인들을 통해 하늘 보좌가 움직이고, 역사는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약 5:16)
아내와 함께 우리 교회 목요기도회에 참석했습니다. 아내는 통증도 심하고 체력적으로 부담이 있었지만, 기도의 자리에 가서 성도님들의 중보기도를 받고 싶어 했습니다. 그날은 엄청나게 많은 눈이 내리고 있었고, 승용차를 운전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예배당에는 50명이 넘는 성도님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뜨겁게 찬양하고, 장로님의 짧은 메시지가 선포되고, 간절하게 기도하는 시간이 계속되었습니다. 목요기도회는 아내의 말기암 진단과 함께 성도님들이 자발적으로 시작한 기도 모임이고, 지난 1년간 한결같이 기도해 왔는데, 성령님의 역사로만 가능할 것입니다. 그야말로 은혜와 감동의 현장이었습니다. 우리 교회가 제자훈련하는 교회로서 평신도운동의 모범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일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 18:19~20)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성도들이 합심하여 기도하는 곳에 당연히 주님이 함께하셨을 겁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매주 모여서 마음을 다해 찬양하고 기도할 때, 그 기도는 하늘의 보좌를 움직이고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하게 했을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때에 주님의 일하심을 기대할 뿐입니다.
절박한 상황을 맞아 3일간 금식기도를 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믿음의 표현이었습니다. 아내를 돌보는 가운데 설교와 심방 등 교회 사역을 병행하면서 하는 금식이었지만, 힘든 줄 모르게 3일이 지났습니다. 그만큼 간절했나 봅니다.
그런데 금식기도에도 함께한 분들이 있었습니다. 지난 토요일 나주에서 목회하는 어느 목사님에게서 문자가 왔습니다. “목사님, 사모님을 위해서 성령님의 임재와 치유하심을 구하며 금식기도 시작합니다.” 그분은 제가 금식기도를 하려는 것을 모르고 있었는데, 동일한 성령님의 감동으로 금식기도에 참여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 성도님들은 여러분들이 동참했습니다. 어떤 분은 한 번도 해본 경험이 없어서 금식을 어떻게 하는 줄도 모르고 3일 동안 온전히 금식하신 분도 있었습니다. 물을 마셔도 되는지, 끝난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되는지도 모르고 무작정 시작한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하루 한 끼니씩 금식하면서 마음을 모아줬습니다. 그렇게 많은 분들이 제 아내 박은주 사모의 치유와 회복을 위해, 성령충만을 위해 중보기도를 하고 있는데, 이것은 단순히 인간적인 정으로는 될 수 없는 일입니다. 인간적으로 아무리 안타까워해도 작정하고 기도의 자리에 나가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저 안타까워할 뿐입니다. 기도의 자리로 나가는 것은 자기 부인과 헌신의 자리, 십자가를 따르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중보기도는 내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닌, 바로 성령님의 감동과 인도하심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기도의 감동에 순종하는 의인들을 통해 하늘 보좌가 움직이고, 역사는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약 5: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