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진짜 믿음
벌써 3주간이나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꼼짝없이 누워만 있습니다. 호스피스병동에 누워있는 아내는 지금도 계속 잠만 자고 있습니다. 진통제를 과다 투여하면서 하루하루 힘을 잃어가는 것 같습니다. 아내와 대화를 나눈 지도 두 주가 넘었습니다. 매일 잠자는 모습, 통증에 시달리는 모습만 지켜볼 뿐입니다. 가끔 깨어 있을 때도 있는데, 그때에도 아무 말이 없습니다. 의식도 희미해지고, 사물에 대한 인식능력이 약해졌습니다. 심지어 평생 함께했던 남편도 몰라볼 때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명확하게 자주 표현하는 말이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주님'입니다. 아내는 잠결에도 또는 통증으로 신음하는 중에도 ‘사랑하는 주님’을 수없이 불렀습니다. 의식이 몽롱한 중에도 허공을 주시하고는 나지막한 소리로 ‘사랑하는 주님'하고 부릅니다. 때로는 무의식중에 ’주여, 주여‘ 할 때도 있습니다. 그때 얼른 아내를 불러봤습니다. 혹시 정신이 깨어 있는 듯싶어서 아내와의 대화를 시도해보는 겁니다. 하지만 간절한 남편에게는 아무런 반응도 없습니다. 눈의 초점도 맞춰지지 않습니다. 역시 의식이 희미한 상태였습니다.
주님의 은혜입니다. 만일 남편은 매 순간 잘 알아보는데, 우리 주님을 잊어버렸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이겠습니까? 아니면 무의식중에 덕스럽지 못하고 불신앙의 말을 마구 쏟아낸다면 어찌하겠습니까?
아내가 건강할 때 이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습니다. “평상시에 마음을 잘 다스리고, 믿음의 인격을 잘 가꿔야 해요! 혹시 치매에 걸릴지도 모르는데, 그때 막 욕을 한다든가 안 좋은 소리 하면 안 되잖아요!” 우스갯소리 같지만, 진지한 대화였습니다. 우리 속마음에 무엇이 담겨있는가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속에 있는 것이 겉으로 나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고 하셨습니다(마 15:18). 의식이 있을 때는 자기통제를 통해 어느 정도 조절할 수 있을지 몰라도, 무의식중에 쏟아내는 것에는 속수무책일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늘 복음의 은혜 가운데 성령충만으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이미 예전부터 아내의 믿음을 인정하고 있었지만, 병상에서 의식을 잃어가는 아내의 모습에서 더욱 확실한 믿음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점차 그 믿음의 고백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더 깊은 잠을 자고 있고, 더 기력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거친 호흡과 신음하는 소리만 크게 들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내 귀에는 그 호흡과 신음 속에 ’사랑하는 주님‘이 크게 들리는 것 같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설교나 칼럼에서 아내와 아들들에 관한 이야기는 쉽게 할 수 없었습니다. 아내가 싫어했기 때문에 사전에 허락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아내는 행여나 자랑이 될까 봐서 늘 경계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아내 얘기 아니고는 쓸 것도 없고, 허락을 받을 수도 없다는 것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아내의 진짜 믿음
벌써 3주간이나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꼼짝없이 누워만 있습니다. 호스피스병동에 누워있는 아내는 지금도 계속 잠만 자고 있습니다. 진통제를 과다 투여하면서 하루하루 힘을 잃어가는 것 같습니다. 아내와 대화를 나눈 지도 두 주가 넘었습니다. 매일 잠자는 모습, 통증에 시달리는 모습만 지켜볼 뿐입니다. 가끔 깨어 있을 때도 있는데, 그때에도 아무 말이 없습니다. 의식도 희미해지고, 사물에 대한 인식능력이 약해졌습니다. 심지어 평생 함께했던 남편도 몰라볼 때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명확하게 자주 표현하는 말이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주님'입니다. 아내는 잠결에도 또는 통증으로 신음하는 중에도 ‘사랑하는 주님’을 수없이 불렀습니다. 의식이 몽롱한 중에도 허공을 주시하고는 나지막한 소리로 ‘사랑하는 주님'하고 부릅니다. 때로는 무의식중에 ’주여, 주여‘ 할 때도 있습니다. 그때 얼른 아내를 불러봤습니다. 혹시 정신이 깨어 있는 듯싶어서 아내와의 대화를 시도해보는 겁니다. 하지만 간절한 남편에게는 아무런 반응도 없습니다. 눈의 초점도 맞춰지지 않습니다. 역시 의식이 희미한 상태였습니다.
주님의 은혜입니다. 만일 남편은 매 순간 잘 알아보는데, 우리 주님을 잊어버렸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이겠습니까? 아니면 무의식중에 덕스럽지 못하고 불신앙의 말을 마구 쏟아낸다면 어찌하겠습니까?
아내가 건강할 때 이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습니다. “평상시에 마음을 잘 다스리고, 믿음의 인격을 잘 가꿔야 해요! 혹시 치매에 걸릴지도 모르는데, 그때 막 욕을 한다든가 안 좋은 소리 하면 안 되잖아요!” 우스갯소리 같지만, 진지한 대화였습니다. 우리 속마음에 무엇이 담겨있는가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속에 있는 것이 겉으로 나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고 하셨습니다(마 15:18). 의식이 있을 때는 자기통제를 통해 어느 정도 조절할 수 있을지 몰라도, 무의식중에 쏟아내는 것에는 속수무책일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늘 복음의 은혜 가운데 성령충만으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이미 예전부터 아내의 믿음을 인정하고 있었지만, 병상에서 의식을 잃어가는 아내의 모습에서 더욱 확실한 믿음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점차 그 믿음의 고백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더 깊은 잠을 자고 있고, 더 기력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거친 호흡과 신음하는 소리만 크게 들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내 귀에는 그 호흡과 신음 속에 ’사랑하는 주님‘이 크게 들리는 것 같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설교나 칼럼에서 아내와 아들들에 관한 이야기는 쉽게 할 수 없었습니다. 아내가 싫어했기 때문에 사전에 허락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아내는 행여나 자랑이 될까 봐서 늘 경계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아내 얘기 아니고는 쓸 것도 없고, 허락을 받을 수도 없다는 것이 안타깝기만 합니다.